가을걷이
손목이 아프셔 꼼짝 못하시더니만,
그새 또 텃밭에 심어놓은 깨를 거두어 들이고 있으시다고 엄니가 그러신다.
농사라야 두분이 심심치 않을 정도로 줄여서 지으시는거지만
올해 아버지의 어깨 수술로 인하여 작은 일들마져 모두 엄마의 몫이다.
고추 익은거 따서 말리고, 배추 무우 속아서 김치 담아 넣어 놓으시고
이거저거 조금씩 조금씩 저장할수 있는건 저장하시고
엄마의 가을걷이가 바쁘시다.
병원 오시는 날에도
무거운거 들고 다니지 마시라고, 질색팔색하는 내게
대추며, 감, 밤 등등 이것저것 조금씩 싸가지고 오셔서는 슬며시 건네주신다.
아버지 정년 퇴직후 벼농사도 해 보시고,
양봉도 해 보시고,
버섯 농사에,
구기자 농사까지...
워낙 그냥 있지를 못하는 성격이신데다가, 몰두하시면 아예 바닥을 보신다.
책을 쌓아놓고 이론공부부터 시작하여
전국을 마다 않으시고 소문난 집으로 찾아가서 노하우 알아오시고
동네분들 가르치시고....
정말이지 못 말리는 울 아버지...
첫 벼농사때에도 그 일대에서 최고의 수확량을 내셔서 목에 힘을 팍 주시드만
양봉하는 3년동안 매일 벌에게서 눈을 못 떼고 지내시더니만
벌의 세계를 읽어내는건 기본이고, 벌들하고 대화까지 하셨다.
동네에서 소문 나기를...
"누구누구(우리장남 큰오라버니 이름을 대면서)네 밭에는 풀도 없슈~~~"
그렇게 밭도 학교 운동장처럼 깨끗하게 정리하셔야 직성이 풀리신다.
덩달아 엄마의 수고가 늘 그림자처럼 뒤따를 수 밖에 없는일....
어깨 수술한지 두달....
의사 선생님께선 워낙 수술이 잘 되어져서 아버지의 어깨 수술 사진으로
강의 때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게다가 한술 더떠, 울아버지는 두달 된 팔로 감을 따셨다고 한다.
매번 수술때마다 의사들을 기절시키는 회복력...
의사선생님 두눈 동그래지면서
그 연세에 수술 두달만에 감을 딴다는건 너무 놀라운 일이라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할말이 하나더 생겼다고 말한다.
첫번째 검진때부터 아버지 기를 마구 살려주면서
병으로부터의 두려움을 없애주던 고마운 의사선생님이 끝까지 웃음을 만들어주는거다.
어차피 수술 하는거고, 시간 되어 회복 되는거고 그런것임에도 불구하고
몇마디의 즐거운 대화로 사람을 참 편하게 해준다.
그래서 참으로 감사하게 느꼈던 의사선생님 중 하나다.
CT 촬영하려 기다리면서 물끄러미 엄마, 아버지를 바라보니 참 많이 늙으셨다.
엄마는 이제 아버지 혼자만 보내신댄다.
아버진 혼자서 길도 잘 못 찾으시게 되었는데 말이다.
말씀은 그러셔도 절대로 아버지 혼자 못 보내실거 뻔히 아는데 말이다.ㅎ ㅎ
귀여운 투정쟁이 울엄마...
"아버지, 아버지는 참 수술을 하셔도 참 크게도 터트려, 그죠?"
"그렇지?"
"남들은 작은 수술 몇번 하기도 힘든데, 아버진 했다하면 대형사고야~"
"그러게 말이다. ㅎ ㅎ"
이제 남은 한쪽 어깨는 수술 안 하시고 아프고 말겠노라고...
너무 고생스러워서 그냥 아프는게 더 낫겠다 하시지만
이번 수술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될정도로 그 전의 큰 수술들을 보자면...
수술한 쪽 어깨가 완전히 나아지면 또 맘이 바뀌시리라 생각하며
"아버지가 하고 싶으신대로 하셔요~" 하고 보내드렸다.
연세때문에 한곳 두곳 자꾸만 고장 나는걸 어찌해 드릴수 없으니
맘만 안스러움으로 가득해진다.
사시는 그 날까지 부디 덜 아프시고, 맘 편하게 지내시기를....
그거밖에 기도할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