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마음
차라는 것의 발명으로 우린 엄청난 시간을 걷지 않고도 살 수 있게 되었다.
추운날도 더운날도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걷는 일 외의 다른것에 시간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이 그만큼 좁아졌다고 해야 하나...
그로 인해 지구가 더워지고,
전쟁에서 죽는 사람보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의 수가 더 많아지고
골목에선 주차전쟁이란 말로 이웃사촌이란 말이 점점 무색해져갔다.
신호 받고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던 막내 차를
신호 무시하고 달려온 트럭이 뻥~ 받아버렸다.
차는 왕창 부서졌는데, 에어백 덕분에 살았다고...놀랜 가슴 달래며 동생이 말한다.
아버지 편찮으신거 때문에 쉿쉿 2~3일 감추다가 할 수 없이 털어놓은 녀석이다.
아니 이제 나이도 마흔이 넘었으니 녀석이란 건....ㅎ ㅎ 그래도 내겐 아직 애 같다.
크게는 안 다쳤다고...그냥 어깨 근육만 좀 다쳤는데,
통증이 가시면 수술을 해야할지 검사할거라면서 안심을 시켜주면서...
겉모습으론 나이롱 환자처럼 입원해 있었다.
외상도 없고, 그만하기 천만다행이다 싶은 보름이었다.
아버지 퇴원하시고 조금 정신 차릴만하니, 이젠 동생녀석 수술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 병실로 갔더니만 막 수술실로 향하는 침대...
불속을 뛰어들던 119 아저씨의 용감한 맘은 어디가고
막내티 더럭더럭 내면서 겁을 낸다.
얼굴 쓰다듬어 주면서
와이프랑 기다리겠노라고 걱정말고 잘 하고 오라고 보내놓고는
한참만에 뜨는 <수술중>이란 단어에...맘이 왜그리도 복잡해지는지...
<수술중>이란 단어가 <회복중>으로 바뀌기를 기다린지 3시간 15분
또 한시간을 기다려 나온 녀석은....비몽사몽중에도 눈물을 보인다.
올케한테 얼른 얼굴 보여주고 손 잡아 주라고 하고는...
엑스레이 찍으려 기다리는 복도에서의 긴 시간...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어대는 녀석을 보면서 얼마나 안쓰럽던지...
추워서 못 견디겠다고....통증이 너무 심하다고....
잠이라도 자면 통증을 잊겠건만 마취에서 깨어나야 하므로 잠들지 못하게 하라니,
하염없이 무거운 눈꺼풀을 자꾸만 깨워서 추위와 통증과 싸우게 해야 한다.
뭐 하나 어찌 해 주지 못하는 입장이 참 힘들다.
이럴때 내 손바닥에 열이 많은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덜덜덜 떨다가도 두 손으로 꼭 잡아주면
아~따뜻해~ 하면서 떨림을 멈춘다.
그러기를 서너시간.....
군대시절 이야기를 한다.
팬티 하나만 입혀서 한겨울 추위에 줄 세워놓고 서너시간 있다가 메리야스를 하나 입으라고 주는데,
그 얇은 메이야스가 얼마나 따뜻한지...얼마나 눈물나게 감사한지 아마도 모를꺼라고...
지금 누나의 손이 딱 그렇다고....
따뜻하다는데, 얼마나 다행인가...
뜨건 손을 못 떼고 여기저기 주물러주고, 잠 깨우느라 얘기 시키고
마취되었던 장기들 깨우느라 물풍선 불게 하고.....
올케가 집에 가서 아이들 좀 챙기고 오는 저녁시간까지 또 하루 종일 병원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워낙 험악한 사고의 현장에서 부딪히며 살던 아이라 그랬을까
그 동안 사고낸 차량에 대해서 뭐라 한마디도 말을 안 하던 녀석이
통증과 추위가 조금 잦아드니 원망의 소릴 한다.
겨우 한마디...."내가 뭔 죄야. 왜 내가 잘못도 없이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냐구~ 왜 남에게 피해를 주냐구~~"
에라잇 밥팅아, 욕이라도 한마디 해랏!!!
자기 때문에 여름휴가 몽땅 반납해야 한 동료들에게 미안한 맘만 가득하다.
어려운 환경의 동료애라고 해야 하나......
계속 걸려오는 동료들의 전화는 참으로 힘이 되는 듯 했다.
119에 몸 담았을때 식구들은 모두 걱정걱정이었다.
내근직이라 괜찮다고 하더니만, 몇년 지난후로는 현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더니만, 응급차를 몰고 나갈 수 있는 대형면허를 따고, 응급조치자격증을 따고,
지금은 또 다른 학과의 공부를 위해 대학공부도 시작하고...
이것저것 소방관으로 갖추어야 할 것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갔다.
아침에 통화하니 잠 잘 자고 아침에 미음도 먹고....
이젠 상처가 아물기만 기다렸다 재활운동을 해야하는 일들만 남았다.
시간이 약이다.
아침에 TV에서 황산테러 당한 여자분의 사연이 방송되었다.
그 아이는 스물여섯 꽃다운 나이에 뭔 황당한 일이냐고....
평생 혼자 살아야 할거 같다면서....
그냥 엄마랑 아버지랑 같이 살자고 인터뷰하던 환자엄마의 눈물...같이 울었다.
잘못 했으면 잘못한 댓가라고나 하지
느닷없이 당한 이 황당한 사건들의 피해자는 억울함을 어디에 호소해야 한단말인가.
어쩔 수 없이 피해를 줬더라도 평생 죄책감을 갖어야 하는데
일부러 피해를 주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그게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