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글씨를 보면서 똑같이 쓰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었다.
볼펜이나 만년필 글씨인데도 멋스럽기도 하고, 똑고르기도 하고, 아름다웠다.
아버지 글씨를 많이 닮아 시원스레 내리 그어 쓰는 언니의 글씨조차 부러웠지만,
난 네모칸 하나 하나 가득차게 가로세로 똑고른 글씨로만 써지는 것이었다.
어찌나 못 마땅하던지...
그나마 펜을 들어 글씨 쓸 일이 없는 지금은
글을 가끔 써야 할 상황이 되면 내 글씨에 내가 당황하게 된다.
정년퇴임을 하고 나신 후 한동안 벌을 키우신다, 벼농사를 지으신다, 버섯농사를 지으신다 하시더니만
힘에 부칠만큼 일을 하고 나신 후에야 친구분들이랑 서예를 배우신다고 하셨다.
소일꺼리로 좋지요~ 하면서
인사동 나가서 좋은 붓도 사다 드리고, 먹도 사다드리고....
사다 드릴때마다 친구분들께 자랑하실 마음에 설레이시는 표정을 못 감추시곤 하셨다.
어느날 전시를 하신댄다.
전시기간에 내려가겠다 말씀 드렸더니, 큰 오라버니께서 한턱 내고 갔으니 안와도 된다고...
친구들끼리 작은 잔치를 하는 거라고 하셨다.
그렇게 한해, 두해, 세해....
살짝 잊었더랬다.
아마도 내 전시에 주위분들 청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맘이시겠지 싶어서
그냥 무심하게 스쳐지난거 아닌지 모르겠다.
죄송스럽다.
팔저림 현상과 어깨 수술로 인하여,
진작부터 붓글씨는 포기하시고
친구분들과 점심을 드시기 위해 서실을 나가시는 요즘이셨기에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몇년만에 귀국한 막내딸에게 선물을 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아픈 팔로라도, 흔들리는 글씨로라도
아버지의 글로 막내딸에게 힘을 주고 싶으셨나보다.
한참을 못 쓰신걸로 아는데, 이날은 이렇게 써가지고 오셨다.
전시했던 작품 두 점과, 그날 쓰신 글을 막내에게 들려 보내신다.
아버지의 마음이다.
동생은 또 얼마나 기쁜맘으로 받았던지...찡~~눈물 글썽.....
(대학로 문예회관대극장)
조그마한 예술적 행위로 보는 이를 감동시키고 미소짓게 함은
살맛 나는 일 아니겠는가.....
무엇이 되었든 하나쯤 내 특기가 있어야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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