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가나 물길은 꼭 있다.
저곳에서 습해서 어찌 사는지...
황금색의 벽과 오래된 지붕에서 뭍어나는 색감이 참으로 멋스럽다.
산이 없던 오나라에서 제일 높았던 산이 이 호구산이었댄다.
해발 36미터, 아니 3600미리미터라 해 달란다. ㅎ ㅎ
호랑이 호자에 언덕구자를 쓰는 호구산은
오나라왕 합려가 월나라와의 싸움에서 목숨을 빼앗기자,
태자 부차가 아버지 죽음을 복수하기 위하여 가시덤불 위에서 자며 복수의 이를 갈았다는
그리고 이곳에 아버지의 묘역을 만든곳이라 한다.
'와신상담'의 이야기는 맨 아래에 따로...
현판에도 오중제일산으로 되어 있다.
아버지의 묘를 만들면서 천명의 인부들로 하여금
천개의(천개로 기억하는데 천이란 단어가 몇번 들어가고보니 약간 헷갈린다) 칼을
함께 묻었다는...
그 칼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시험했다는 시금석이 호구산 입구에 위치해 있고
그리고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천명의 목숨을 다 거두었다는 바위가
천인석이란 이름으로 광장에 있다.
신선이 바둑 두는걸 잠시 보고 돌아섰을뿐인데 이미 도끼자루가 썩어졌다는...
그래서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는 말이 나온곳...
후대에 합려의 묘안에 있는 칼을 발굴하려 했으나
이곳에 물이 나오고 탑이 기우는 바람에 발굴을 중단했다는....
중국도 전설이 하두 과해서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저 글씨 아래에서 뽀글뽀글 물이 솟아나온다.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병을 앓던 서시가
아파서 찡그린 모습까지 아름다워
주위에 못생긴 여자들까지 자기들도 예뻐보일까 찡그리다가 망했다는...ㅋㅋㅋ
서시가 자신의 미모를 아래에 있는 물에 거울처럼 비추어 보았다는 구멍이란다.
이 소주운암사탑 아래에 아버지 합려의 시신이 놓여져 있다는 야그가 전해져 오고...
이 탑은 피사의 탑처럼 한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
비가 많고 태양이 적어 그들의 기와는 이렇게 작고 검댄다.
해가 뜨면 빨리 태양열을 흡수하기 위한 것이라나...
'와신상담'이야기
오와 월나라는 서로 붙어 있어서인지 두 나라 사이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오월동주(吳越同舟)*의 고사처럼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B.C 584년 전후로 오나라는 진(晉)나라의 ‘오를 도와 초를 제압 한다’는 전략의 영향아래
군사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아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었다.
마침내 오왕 합려는 오자서를 모사로 등용하고, 군사가 손무를 장군으로 삼았다.
한편, 절강성을 중심으로 남방계 이민족이 건국한 월나라는
초나라의 ‘월을 도와 오를 제압 한다’는 전략아래 많은 도움을 받고,
오나라와 충돌하여 오나라 군사를 격파한다.
이때의 부상으로 오왕 합려가 사망한다.
이에 합려의 태자 부차는 가시덤불 위에서 잠을 자며[臥薪] 복수를 다짐하고
재상 오자서를 중심으로 군사를 조련했다.
몇 년간을 철저히 조련해서 월나라를 공격해서 승리를 거두었다.
월왕 구천은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베옷을 입고 양을 끌고 나오며 항복했다.
측은해하는 오왕 부차를 보며, 오자서는 죽일 것을 청했다.
하지만 범려에게 막대한 뇌물은 받은 오의 간신 백비는 살려줄 것을 말했다.
오왕 부차는 구천을 살려주고 구천으로 하여금 합려의 무덤을 돌보는 일을 시켰다.
많은 역사 속에서 이처럼 간신의 말은 언제나 달콤하다.
그것은 왕의 심중을 잘 파악한다는 것이다.
이런 간신들이 그들의 능력을 잘 활용했더라면, 당대의 사회도 발전할 것이며,
후세에도 명성을 떨칠 것인데, 그러지 못하는 그들이 다소 아쉽기만 하다.
구천은 무덤을 돌보며 복수를 다짐했다.
문종(文種)은 오나라에서 내정을 힘쓰고, 범려는 구천의 수발을 들며,
백비에게 많은 뇌물을 바치며 후일을 도모했다.
구천은 범려의 지시대로 아픈 부차의 변까지 맛보았다.
이에 감복한 부차는 구천을 석방하려하자 오자서가 강력히 반대했다.
장군인 그는 말을 화려하게 하지는 못했다.
결국 화려한 말솜씨의 백비의 간언에 따라 구천을 석방한다.
구천은 돌아와 곰의 쓸개를 씹으며[嘗膽] 복수를 맹세했다.
범려는 부국을 만드는 계책을 세웠다.
구천에게 백성들을 찾아가 같이 슬퍼하고 농사를 지을 때 같이 일을 거두어 민심을 얻게 했다.
또한 과부들에게는 수절하지 말고 개가하라는 영을 내리고,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으면 벌을 주고, 다산하면 상을 주었다.
강력한 인구증산책을 쓴 것이다.
그러면서도 오왕 부차의 의심을 풀기위해 해마다 진귀한 보물을 바쳤다.
그 중 중국의 대표 미녀 서시(西施)도 있었다.
부차가 서시를 총애하자 오자서는 다시 충간을 했다.
쓴 소리에 염증이 난 부차는 결국 오자서를 죽였다.
오자서는 죽으면서 자신의 목을 동문에 매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월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기 위해서다.
결국 월군에 오군은 대패하고 만다.
구천은 항복하는 부차를 죽였지만, 서시의 미색에 빠져 돌아오지 않고,
논공행상에도 관심이 없었다.
30년간 구천을 모신 범려는 구천은 패자가 못 된다하며 대부 문종에게 편지를 남기며 월나라를 떠난다.
편지의 내용 중 일부는 이렇다.
“공중에 나는 새가 기운이 다하면 좋은 활은 쓸모가 없고[鳥盡弓藏],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먹고 [吐死狗烹] 적국이 망하면 책사는 반드시 모략을 박아 죽습니다.
월왕의 상은 목이 길고 입은 까마귀 주둥이입니다[長頸烏喙]
고난은 함께 할 수 있으나 부귀는 함께 누릴 수 없으니 천수를 누리며 살고 싶거든
속히 월나라를 떠나십시오.”
하지만 문종은 자리에 연연하다 결국 간신들의 탄핵을 받고 죽었다.
범려는 제나라로 가서 많은 돈을 벌어 재신이 되었다는 소문만 들리고 있다.
오자서와 범려는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결국 상반된 인생의 결말을 맞이하였다.
‘뛰어난 참모는 훌륭한 군주를 알아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부차나 구천은 인물됨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오자서는 이를 알지 못하고 끝까지 충언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이것이 오자서와 범려의 차이이다.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것이 현명한 길이 될 수 있겠다.
오월동주(吳越同舟) : <세상을 뒤바꾼 책사들의 이야기>에서는
'오와 월이 한 배를 타고 초와 대항해야 한다'고 써있고,
<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에서는 '오 사람과 월 사람이 한 배 탔다‘고 하여
원수끼리 만났다라고 쓰여 있다.
뭐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후자 쪽으로 썼다.
집필자 : madgenie
-네이버 오픈백과에서 퍼옴-
도자기 만드는 곳에 들러 나보다 더 큰 주전자와 함께 기념으로....
2006. 11. 28